5월 광주 잡문

지난 겨울 나는 몇몇 탈북자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이미 한국사회에 많이 적응한 듯 보였고 보통의 한국 중년 남성과 큰 차이를 찾아 보기 힘들었다. 다만 그들의 말 속에 섞여 나오는 억양과 조금은 어두운 눈빛에서 그가 낯선 곳에서 온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준비하고 있던 작업에 대한 설명을 했고, 예전에 작업했던 광주의 희생자에 대한 작업을 보여줬다. 북한에 대해서, 남한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던 그들의 표정이 그 작업을 보며 어두워 졌다. 

 
말없이 책을 훑어 보던 그들이 나에게 광주의 진실을 알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고, 그들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1980년 당시 북한에서는 남한의 어느 지역에 보내기위한 특수부대가 훈련되고 있었다고 했다. 그 부대는 남한사람들을 교란 시키기 위해 남한 사람의 억양과 습관 등을 철저히 교육 받았다고 했다. 그들은 첫번 째 목적지를 광주로 정했고, 일단의 특수부대들은 공수부대원 절반, 광주 시민절반으로 나뉘어 서로를 긴장 시켰다고 했다. 공수부대원으로 분한 공작원들은 광주 시민들을 무자비 하게 진압했고, 시민으로 분장한 공작원들은 남한의 군인에게 격하게 저항 했다고 한다.

그들은 광주 시민들과 공수대원들이 서로를 적으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일에 성공했고, 남한의 군인들은 어느 순간 광주의 일들이 북한 공작원에 의해 계획 된 것이라는 것을 알아챘다고 한다. 그들은 그때 부터 북한에서 내려온 그들조차 예상하지 못한 만큼 무자비하게 시민들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광주를 통해 다른 도시로 이동하려던 공작원들은 광주에서 거의 다 사망했다고 한다. 몇몇 살아 남은 공작원들은 북한에 돌아가 훈장을 받고 지금도 고위급 공무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평양에는 광주에 침투 했던 공작원들을 위한 묘지가 성대하게 만들어졌고, 그들의 가족 또한 보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자신도 남한에 침투되기 위해 훈련을 받았지만, 어떤 사정에 의해 남한에 오지는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북에서 광주의 소식을 듣고 있었고, 누가 죽었는지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들도 당시의 군사정권이 그 정도로 무자비 하게 시민들을 사살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무자비한 탄압 덕분에 북한에서 온 공작원들 역시 거의 목숨을 잃었고, 광주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던 공작원들 역시 계획에 실패했다고 했다. 그들에 의하면 아이러니 하게도 광주의 참사가 북에서 온 공작원들의 다른 지역 침투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전두환은 악당이지만, 남한 사람들은 그에게 어느정도 감사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나는 광주가 북측 공작원들에 의해 시작된 것을 그 당시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면 왜 그것이 전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들은 '김대중씨와 미국은 알고 있었다'라고 대답했다. 광주는 남한 진보세력에게 하나의 상징이 되었고, 그들에게 광주를 부정하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 사실을 덮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나는 그들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한국의 근대사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많은 이들에게 그렇듯이 나역시 광주를 통해서 였고, 그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정신에 한동안 빠져 지냈다. 교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5월 광주를 대학 졸업 작품의 주제로 결정한 것 역시 대학시절 나에게 가장 큰 정신적 영향을 준 사건을 내 손으로 직접 다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의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이야기는 광주를 처음 접할 때 부터 어느 한편에서 들려오던 극우 세력의 헛된 소문과 한치도 다르지 않은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가 '우리가 한 일'이라고 말할때, 내가 읽고 습득한 간접적인 지식들은 그들의 말을 반박할 만큼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는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역사를 해석하는 시각이 더 넓어 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들은 '역사는 한 쪽의 이야기만 들어선 안되.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듣고 그리고 자신의 줏대대로 해석해야지.'라며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마쳤다. 하나의 절대적 신념과도 같았던 광주 역시, 그 역사 뒤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일들이 존재하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 스스로 광주를 하나의 우상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광주를 생각할 때 나는 가슴이 뜨겁다. 누군가 그들을 교란 시졌든, 그렇지 않든, 그들은 자신의 신념과 이웃들의 목숨을 위해 싸웠고 기꺼이 그 신념을 자신의 목숨과 바꿨다. 5월 18일 광주운동 추모식 전날, 가라오케에서 여자들과 흥청망청 대는 정치인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썪어빠진 나라지만, 광주 사람들이 남겨준 유산은 분명 지속 되고 있다고 믿는다. 나 역시 그 유산에 빚을 지고있고 나 스스로 그들 앞에서 떳떳할 수 있기를 항상 바란다.  다시 한번 안식하시기를 바란다. 

덧글

  • 2011/05/18 19:4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준호 2011/05/19 05:40 #

    네 부정하고 싶어도 한국 역사에서 북한과의 관계는 어쩔 수 없이 따라 다니는 것 같습니다.6월 말에 런던에 계시다면 졸업전시를 보러 오시면 좋겠습니다. 직접 뵙고 인사 드릴 수 있겠네요. ㅎㅎ
  • 오월 2011/05/18 23:26 #

    탈북자들 주장대로 무장공비 60명이나 죽어서 북한에 애국열사 빈무덤 만들 정도로 많이 무장공비가 희생당했는데, 당시 국군과 무장공비가 대대적으로 교전을 벌였다는 기록은 왜 없을까요.
  • numa 2011/05/19 00:58 #

    흠-_-; 사실 중요한건 이쪽 이념이냐 저쪽 이념이냐에 앞서 어느 것이 진실인가... 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아직까지 밝혀진 건 윗 글에 나타나신 분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구요. 뭐 관련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이라면 워낙에 이사람 저사람 말이 많아서;;

    다만 윗 글대로 폭동이 조장된 것이라면, 다수의 조직원이 남하해서 광주까지 무사히 침투했다는 것인데, 그게 어느 정도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장비도 다 들고 왔어야 하는거고;; 그리고 "어느 순간" 알아챘다는 것도 좀 이상하구요;; 뭐 솔직히 믿음이 안갑니다.
  • 2011/05/19 01:0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준호 2011/05/19 05:42 #

    안녕하세요. 말씀 하신 정의가 사실 제가 원하는 작업과 삶의 방향입니다. 정확히 봐 주셨네요. ㅎㅎ 가을에는 아마 런던에 있을 듯 합니다. 메일로 약속을 잡고 만나뵈면 될 것 같습니다. 블로그에서 작업을 보았는데 만나면 즐겁게 대화 할 수 있을 듯합니다. ^^
  • 2011/05/19 16:3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준호 2011/05/22 09:51 #

    네 감사합니다. 그럼 가을에 뵐 수 있을 듯 합니다. ^^
  • 2011/05/26 07:23 # 삭제

    이 얘기 듣고 싶었는데 써 줘서 고마워요!
  • 준호 2011/05/30 02:56 #

    고맙긴 ㅎㅎ 근데 왜 넌 '느'야?
  • real3208 2011/05/30 11:45 #

    르포(현장탐방보고)가 가진 오류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탐방하는 자는 그 때 그 현장의 분위기와 자신의 느낌에서 오는 것을 사실(fact)이라고 믿게 되는 경향이 강하거든. 지금은 조빱이 됐지만 조갑제도 부산일보 기자시절에는 굉장히 전도유망한 기자였다고 하더라. 그런데 이 조갑제도 르포의 오류에 빠져서 박정희 똥꼬나 빨아대게 된거고. 무엇이든 중립적인 위치에서 이성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가져야 할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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