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사람이 있다. 작업

 
처음 유학을 결심하면서 몇가지 다짐을 했다. 그 첫번째가 내가 나고 자라온 곳, 한국에 대한 관심을 놓지 말자는 것이었다. 유학 다녀온 많은 사람들의 작업(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에서 그들이 나고 자란 곳이 한국이란 것을 찾아 보기란 쉽지 않았다. 그들이 보여주는 유학 전과 유학후의 차이는 마치 TV 프로그램 '러브하우스'를 볼 때 느꼈던, (새집으로 리모델링 된 집을 볼때의) 멋지지만 어딘가 낯선 느낌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런 생경함은 단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정 학교와 지역을 연상 시키는 작업 스타일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 한국사회가 보여주는 비상식적인 전근대성과 그들이 보여주는 세련된 모던함의 차이에서 오는 것 같았다. 그들은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았고 그들의 작업은 미국 혹은 유럽의 어느 현대 미술관에서 마주칠 법한 예술작품들 처럼 보였다. 나는 그 모던함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촌스러웠지만, 그 촌스러움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유학이라는 과정을 통해 지워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것 없이는 내가 나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용산참사 그리고 재개발 문제
2009년 겨울 용산에서는 6명의 사람이 죽었다. 그들은 일부 언론에서 떠들어 대는 것 처럼 전문 시위꾼이나 돈 몇푼 더 달라고 쌩떼꺼리를 쓰는 사람들은 아닌것 같았다. 그들은 내가 대학시절 자주 갔던 소주방의 이모님 같은 분들이었고, 그들의 가족들이 그 자리에서 불에 타서 죽었다. 참사가 일어난 후 몇개월이 지난 후에야 나는 그곳에 찾아 갈 수 있었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여전히 국가와 거대한 건설회사들을 대상으로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내가 그곳에 도착하기 몇시간 전 마지막 까지 버티던 세입자의 가게에 이유모를 가스폭팔이 터졌다. 그 세입자는 가게를 비우고 도망 갈 수 밖에 없었고 그 사이에 그 가게는 용역들에 의해 철거 당했다. 그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고 사람들은 미처 손을 쓸 수 없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경찰과 깡패를 구분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경찰과 깡패가 하는 일은 달라 보이지 않았다.

MK 치킨 이라는 작은 가게에서 이유모를 가스 폭발이 터졌다. 그곳에 계신 분들에 의하면 용산4구역에서는 이런 이유를 알 수 없는 폭발들이 자주 일어 났고, 그때마다 용역들이 나타나 가게를 철거하곤 했다고 한다. (2009년 용산)

폭력적인 철거와 재개발은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현재 진행형인 사회적 이슈다. 중국에서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을 짓기 위해 많은 지역을 재개발했고,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강제 이주를 해야했다. 나이지리아에서, 브라질에서,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강제적인 철거와 강제철거에 반대하는 세입자에 대한 폭력적인 진압은 계속되고 있다. (용산에서 참사가 벌어진 후 폭력적인 재개발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비판받았지만, 유가족들에 대한 보상과 함께 그 논의 또한 사그라 들은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2010년 한국에서는 이미 제2, 3의 용산이 반복 되고 있다. 홍대앞 식당 두리반 강제철거 위협)

2008년 7월 베이징

2009년 2월 나이지리아

2008년 3월 브라질


중국이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진행한 강제적인 철거를 보면서 나는 김동원님의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을 떠올렸다. 20년 전 대한민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준비한다는 명목아래 상계동 일대를 재개발 하기 시작했고, 그 지역에 살던 주민들은 갈 곳을 잃었다. 베이징의 강제철거는 20년 전 우리의 모습을 정확하게 떠올려줬다. 하지만 20년 후 용산에서 그 일은 또 반복 되고 있었다. 한국이라는 사회는 20년 이라는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 가는 것 같았다. 20년전 그랬던 것 처럼, 세입자들은 여전히 돈이 없었고, 폭력에 저항할 힘도, 갈곳도 없었다. 경찰과 국가는 여전히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저기 사람이 있다
어느날 사진가 노순택님의 용산 참사 유족들에 대한 사진을 봤다. 사진속의 사람들은 비통한 표정으로 영정사진을 들고 서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사진은 모두 제대로 된 영정 사진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중 한명(그가 한대성씨의 부인 신숙자씨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은 자신의 남편 사진조차 준비하지 못했다. 나는 궁금해 졌다. 아무리 급했어도 남편의 장례식에 준비할 사진 한장 조차 없었을까.

사진 노순택 / 남일당 디자인 올림픽 Namildang Design Olympic # II 중에서


나는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들어보고 싶었다. 용산참사대책위에서 제작한 책자와 인터뷰 동영상 등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 사람을 그렇게 비참하게 죽일수가 없다. 난도질을 해 놨다. 불에 타서 죽은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손가락이 잘라져있고 이가 부러져 있고 머리 두개골이 쪼개져 있고 유가족한테 상의 한마디 없이 부검을 했고, 30년을 같이 산 나도 알아 볼 수가 없다. '돈없이 사는것이 죄다.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꼭 올라가서 성공하고 돌아 오겠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올라 갔다.
마지막으로 된장국을 해서 먹였다. 바뻐서 못먹는다는 걸 억지로 먹였다. 그래도 밥먹으니까 속이 풀려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걸 먹여서 보냈으니 다행이지, 안 먹였으면 얼마나 후회가 됐을까. 지금 너무 너무 힘들다. "
- 양희성씨의 부인, 김영덕씨

"1월 29일에 아버지와 빙어 낚시를 가기로 했었다. 친구들도 같이 가기로 약속했었는데.. 나와 동생은 학교에서 학비를 지원받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아버지는 내 또래 깡패들에게 얼굴을 얻어 맞은날 혼자 술을 드셨다. 아버지가 용역들에게 맞고 있을때 경찰은 신고를 받고도 멀리서 지켜 보기만 했다. 그해 겨울에 살던 집이 갑자기 없어졌다. 기르던 강아지도 없어졌고 모든것이 사라졌다. 아버지는 돌아 가시기 전날 5일정도 못들어 온다고 했다.
밥 잘 챙겨 먹고 어머니를 잘 돌보라고 했다. 그게 마지막이 될줄 몰랐다. 많이 야윈 어머니를 보는것이 너무 힘들다. 8살짜리 동생이 무너져 버릴까봐 무섭다. 사랑한다는 말한마디 못하고 보낸것이 너무 죄송해서, 너무나 억울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
- 윤용현씨의 아들, 윤현구씨

"철거 깡패들이 시아버지의 급소를 때렸다. 70대 노인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말이 안나온다. 주먹에 맞아 바닥에 쓰러져 옷이 찢기고, 그 광경을 본 시민들도 어처구니 없어 했다. 백주대낮에 30대 남자가 70대 노인을 때리고 끌고 갔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까 다가와서 카메라를 부셔버렸다. 경찰을 불러도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 도망가 버렸고, 깡패한명이 대걸레자루에 갈고리를 들고 나타나 가게 간판을 다 부셔 버렸다. 아버지가 깡패들을 고소하자 그 깡패가 맞고소 했다. 경찰은 우리를 잡으러 왔다. 말이 안된다. 시아버지는 한 자리에서 30년 동안 장사를 하셨다. 이사도 한번 안가셨다. 가게는 작고 우리는 넉넉하지 않았지만 살만했다. 재개발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아버지가 불속에서 타 죽고, 우리 막내동생이 무릎뼈가 다 으스러진 채 감옥에 갇히게 될줄 정말 몰랐다. 우리는 그냥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 이었다.
아버지와 남편이 대모하러 옥상에 올라 가자 신고해도 오지 않던 경찰 수천명이 몰려왔다. 아버지와 남편이 엄청나게 맞을 거라는 생각에 어쩔 줄을 몰랐다. 기도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때도 죽을 줄은 몰랐다. 살려고 대모한거지 죽으려고 대모한게 아니다. 손이 없고 발이 없고 목이 잘려 나갔다. 가족들 동의 없이 어떻게 이렇게 시체를 훼손할 수가 있나. 이젠 뭐가 진실인지 뭐가 현실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대통령도 장로고 조합장도 교회 장로다. 그들이 도대체 무슨 기도를 할까 너무 궁금하다."
- 이상림씨의 며느리,  정영신

"갑자기 아이들 생각이 나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이 과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 애들이 난도질당한 아버지를 봤을때, 아버지가 왜 죽었는지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는데.. 우리한테 설명도 안하고 부검한거 결과를 알려 달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일년이 가까이 지나도록 알려주지를 않는다.
뼈만 남은 시신을 가지고 청와대로 갔다. 내 남편인지 알아 보지 못할만큼 훼손 됐지만 그게 마지막 선택이었다. 이렇게 진실을 알려 달라고 구걸하는게 너무 비참해서 미칠거 같다. 우리한테 정말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권력이 이렇게 무섭다는걸 처음 알았다. 죽고 싶은 마음뿐이다."
- 이성수씨 부인, 권명숙

"우리가족에게 겨울은 항상 추웠습니다. 하지만 좁은 냉동실 안에 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때 마저 그립습니다. 이제..겨울도 다시 오는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아빠가 진짜 죽긴 죽었나보다 싶어요. '상현아 아버지는 평생을 정직하게 살려고 애썼다. 정직한게 죄라면 우리가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엄마 잘 보살펴 드려라. 몇일 걸리지 않을거야.' 난 어떻게 대답했어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아빠와 엄마와 나는 바람을 막아주는 벽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 이성수씨 아들,  이상현

"죽으려고 거길 누가 올라가겠어요. 다 살려고 가는거 아니에요. 일년동안 장례를 치르지 못해 병원비가 3억원이 넘는다. 이제 물러날 곳이 없다. 하지만 병원비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무섭고 힘들다. 지친다. 이 일이 잘 해결된다고 해도 다시 살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이 너무 억울하게 죽었다.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다.
갑작스러운 일을 당해 답답하기만 합니다. 다섯 가족 모두 너무 힘이 듭니다. 여러 사람들이 도와주고 있는데 정부는 꿈쩍도 안 하고 사람들이 지친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남편이 부당한 현실에 맞서기로 마음 맞는 사람들과 결정해서 한 일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진상이 밝혀지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못 하는 일이고 같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 한대성씨의 부인, 신숙자씨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서 많이 놀랐다. 그 이야기 자체의 끔찍함에 놀랐고, 민주화를 이룬지 20년이 되어간다는 나라가 사회의 구성원을 대하는 태도에 놀랐다. 한국에서 모던함을 이야기 하기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너무 끔찍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그 어떤 자료들 보다도 이 사회의 한 단면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단지 그들이 겪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지만, 그 이야기는 단순히 한국의 용산이라는 지역에서 일어난 재개발과 참사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것은 오늘날 수 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개발에 의해 쫓겨나는 세입자의 이야기 였고,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마주치는 평범한 사람들의 절박한 이야기였다.


음악 그리고 텍스트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선동하지 않되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전달하고 싶었다. 이 촌스러운 나라의 모더니스트들은 조금의 감정적인 표현에도 진절머리를 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그들의 모던함이 '수입'된 것이기에, 한국 사람들의 질박한 감정 조차도 서양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듯 한데, 나는 그 모순을 피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글자는 생각을 정리해주고 소리는 생각을 퍼트려 준다. 나는 이 두가지 요소의 각 각 다른 전달 방식을 이 작업안에서 시도해 보고 싶었다. 희생자들의 말은 이성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그들의 말 속에서 그들의 감정상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었다. 그 말들은 직설적이고 감정적이었지만, 나는 그 것들을 내 이성을 사용해서 제단하고 정리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글자가 되어 지면위에 옮겨 졌을때, 그들의 절박한 감정상태는 반감되는 듯 했다. 나는 '소리'가 그 부족함을 채워 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음악과 소리의 중간
그들의 '말'을 소리로 만들기 위해 길드홀 음악 대학 Guild hall music school에서 작곡을 공부하는 에이코 라는 일본 학생과 함께 작업했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조사한 모든 자료와 사진을 넘겨 주었고, 오랜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한국에서 아직도 이런일이 일어 난다는 것에 굉장히 놀라는 듯했다. 그녀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된다며 열정적으로 작업에 참여해 주었다.
우리는 그들의 말이 반영될 그것이 음악과 소리의 중간 이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다.그들의 말속에서 때로 감정은 명확한 형태를 드러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표출하는 감정은 명확하지 않았다. 불안, 긴장, 공포, 허탈함과 같은 감정과 그 일이 일어나기 전, 과거에 대한 추억, 그리움, 슬픔같은 감정이 한곳에 뒤섞여 있었다. 우리는 음악과 소리의 중간상태를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대화하고 작업했다.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어느날 책상위에 놓여 있는 작은 오르골을 발견했다. (지금도 그 오르골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겠다.) 무심코 돌려본 그 작은 상자에서는 애절하고 구슬픈, 하지만 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는 내 어린시절 어머니가 연주해 주시던 이름 모를 악기를 떠올려줬다.  나는 그 작은 악기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궁금해졌고, 그것의 구조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오르골의 가운데에는 작은 원통이 있었고 그 위에 있는 오돌토돌한 돌기가 쇠로 만들어진 건반과 부딧히면서 소리를 만들어 냈다. 그 돌기들은 마치 점자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들이 그 오르골이 만들어 내는 음악의 악보(실제로 그 돌기들은 악보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이자 가사인 것 처럼 느껴졌다.

가운데 있는 원통위의 돌기들이 각 각의 음계를 대표하는 건반과 부딧히면서 소리를 만들어 낸다.

나는 오르골을 연주 할때 같은 악보에 따라 만들어진 음악도 연주하는 사람의 감정상태에 따라 그 소리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내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결국 그곳에서 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였다. 나는 만들어진 음악/소리를 관람자의 참여없이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싶지는 않았다.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오르골은 이 작업에 적합한 도구라고 생각했다.

인터넷을 통해 종이악보를 사용하는 오르골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것은 펀치와 같은 도구로 종이에 구멍을 뚫을 수 있었고 그 구멍들이 기존 오르골의 돌기와 같은 역할을 했다.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작곡할 수 있는 오르골 (music box) 이곳 에서 구입할 수 있다.

이런식으로 구멍을 뚫어서 내가 만들어 내고 싶은 음악을 작곡 할 수 있다. 종이 위에는 오선지가 그려져 있어서 기존의 악보와 같은 역할을 한다.


나는 그들의 증언들을 우리가 만들어낸 악보의 레이아웃을 따라 배치했다. 오르골을 통해 연주 될 음악/소리는 그들의 이야기에 기반해서 작곡 되었고, 나는 그것이 그들에 대한 음악이라기 보다 그들의 말 자체로 사람들에게 들리길 바랬다.



악보의 레이아웃을 따라 글자를 배치시켰다. 그들의 말이 이 음악/소리를 연주하는 악보이자 가사가 되기를 바랬다.


소리의 질감, 글자의 질감
나는 활자인쇄를 사용해서 악보위에 글자를 찍기로 했다. 활자인쇄는 글자를 종이 위에 단순히 올려 놓는 것이 아닌, '꾹' 하고 눌러 준다. 종이 위에 찍힌 글자는 손으로 그 질감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우둘 투둘한 느낌이 오르골의 돌기들과 비슷한 질감을 만들어 줬다.

나는 잉크를 글자위에 단 한번만 바른 후 여러번 찍었다. 처음에는 선명했던 글자가 점 점 흐려졌고, 그에 따라 소리 역시 불완전 해 지도록 했다. 검은색 글자와 함께 연주될 소리는 우리가 작곡한 그대로 였고, 글자가 옅어 질 수록 악보위의 구멍의 갯수를 줄어 들도록 했다. 짙고 선명한 소리와 글자는 옅고 불분명한 형태까지 순환, 반복 된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우리주변의 일들을 잊어 버리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2009년 겨울 용산에서 목숨을 잃은 6명의 희생자와 폭력적인 재개발은 우리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였지만 일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이미 용산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잊어 버린 듯 했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잊은 채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어느순간 다시 반복 될지도 모른다. 20년전 아무도 2009년의 서울에서 그 일이 다시 반복 될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것 처럼.

낱장의 악보들,  하나의 긴 악보로 연결한 후 오르골을 통해 순환 연주 되도록 했다.

잉크가 없는 상태로 찍힌 종이 위에는 글자의 질감만 남았다.



소리를 읽고 글자를 듣는다
나는 이 작업을 접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읽고 들으면서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랬다.

고윤용현


고양희성

고이상림

고한대성

고이성수




우리가 감당 할 수 없는 일들
용산을 포함한 대부분의 재개발은 국가의 의도와 거대한 건설회사의 이익에 따라 진행된다. 개인의 힘으로 감당하기에는 그들의 계획이 너무나 거대하고, 폭력적이다. 그들은 세입자들에게 조용하고 나즈막히 '좀 나가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나는 사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그 거대한 폭력의 질감을 눈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오르골을 통해 표현하려고 했던 희생자들의 감정의 울림은 그 폭력의 질감을 표현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나는 그 거대한 느낌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오르골을 통해 연주될 악보를 수백배 확대하고 그 위에 그들의 목소리를 악보와 같은 레이아웃에 맞춰 그려나갔다.

약 6m 길이 종이 위에 작업을 하기로 했다. 이 자체가 사람들을 압도 했던 건물들 처럼 보여지길 바랬다.

인쇄한 글자와 종이 사이에 먹지를 넣고 글자를 그려 나갔다.



단어 한개를 완성하는데 몇가지 단계가 필요했다. 그들은 불에 타서 비참하게 죽었고, 나는 목탄을 사용해서 그 질감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과정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이 작업을 쉽게 하고 싶진 않았다. 내 몸과 손가락을 사용해서 작업하는 것이 더 맞다고 생각했다.









왜 지금 한국의 용산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하나
튜터 중의 한명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너는 왜 과거의 일에만 관심을 갖냐?' (나는 그런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학교의 정식 튜터가 아닌 것에 안도했다.) 한국은 더이상 개발도상국이라고 불리지는 않지만 선진국 또한 아니다. (선진국이냐 아니냐를 그 나라의 경제규모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면 한국은 사실 여전히 개발도상국 보다도 못한 전근대적인 국가일지도 모른다.) 십수년전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고, 이 나라에서 일어난 일들은 수십년 후 지금의 개발 도상국가에서 반복될지도 모른다. 오랜시간 동안 그 순환은 반복되어 왔다. 

나는 이 작업이 일종의 사례연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작업을 통해 나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재개발에 따른 인권침해'를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조금 더 직접적이고 날것 그대로의 감정과 정보를 나의 시각으로 재해석 해 전달하고 싶었고, 이 작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지구의 반대편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방식이 사람들에게 내가(혹은 이 사회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전달 하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연구의 대상이 내가 나고 자란 곳,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대한민국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았다.

내가 이 작업을 진행할때 아이티에서는 엄청난 지진으로 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의 사정은 모른척하면서 누구나 공감(동정) 할 수 있는 가치중립적인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태도는 마치 용산에서 갈곳을 잃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아이티와 같은 곳에는 엄청난 구호헌금을 보내는 한국의 대형 교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 혹은 디자인
나는 이 작업을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진행하지는 않았지만, 이 작업이 예술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클라이언트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지는 않았지만, 내가 이 작업을 계획하고 진행했던 이유는 분명 어떤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필요가 '소비'와 연관 되어 있지는 않지만, 더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소위 예술 작품이라 불리는 것들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대학시절 교수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중에 하나는 '너 예술하냐?' 라는 핀잔 섞인 조롱이었다. 아마도 그들의 그런 말속엔, 돈과 관계 없이 젊음을 허비하는 것 처럼 보이는 예술가들에 대한 비하와 자신들이 규정해 놓은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벗어나는 시각물들에 대한 거부반응이 섞여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작업이 소수 몇몇의 교육받은 사람들과 예술가들을 위한 '개념 놀이'가 아닌, 보편적인 가치를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 한다면, 또한 그 작업이 그것이 만들어진 사회를 반영하고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자신들이 속한 사회를 한번 더 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면, 비록 그것의 경제적인 가치가 없다고 하더라도 예술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가치가 돈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디자인'이라고 불리기 위한 필요조건 또한 돈이외에 많은 것들이 있지 않을까. 


묻고 대답하기
오늘날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국가들의 문화적 풍성함과 경제적 윤택함은 대부분, 그들이 식민지 삼았던 국가들의 피눈물 위에 이루어졌다. 선진국에 태어나 더 많이 누리고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사람들은 그들이 누린 풍성함 만큼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책임의식을 단순히 국가 단위로만 나누어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같은 나라에 태어나 평생을 자랐어도, 재벌 아버지의 자식과 노동자의 아들이 체감하는 사회는 현저히 다를 수 밖에 없다. 재벌이 누리는 그 모든 경제적 풍요가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회사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의 노동에 기반한다고 할때, 재벌이 가져야할 사회적 책임은 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선진국에 살고 있는 지식인들이 자기 자식걱정만 하는 것이 이기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는것 처럼,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영국이라는 곳에서 비싼 돈을 내고 공부하는 사람이 자신의 개인적인 관심사만을 다루는 것 역시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튜터와 가장 많은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던 부분 역시 비슷한 문제의식에 기반하는 것들이었다. 나의 개인 튜터는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작업이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은 아닌지. 이 작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작업의 소재로 쓰이는 것은 아닌지. 나는 도대체 누구와 이 작업을 통해 소통하고 싶은 것인지. 내가 하려고 하는 작업 방식이 이 주제를 전달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것인지.

수 많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지금 당장 내리기는 힘들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내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돌아보며, 내가 지금까지 해온, 그리고 앞으로 해 나갈 작업들을 통해서만 겨우 답할 수 있을것이다.


추신
이 작업의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와 골격은 민호형과의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 졌다. 내가 작업 했던 찢어진 깃폭이라는 작업의 한계 (직접적이고 강한 증언을 기반으로 하는 고발형식의 작업)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민호형과의 아이디어 회의는 이 작업이 조금은 덜 선동적이지만 감정적으로는 더 설득력을 갖게 해줬다. 단지 내 작업에 대한 이해 뿐만 아니라, 나라는 사람과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사람과의 대화는 학교에서 만난 튜터나 학생들과의 대화와는 다른 깊이를 갖게 되는 것 같다.  같은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하고 작업할 수 있는 형제가 있다는 것은 즐겁고 기쁜일이다.


전시회 풍경
(클릭 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핑백

  • Joonhosays : 용산 2년, 현실의 거리 2011-01-21 05:15:32 #

    ... , 내가 만들어 내는 것들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될 수 있다면 나 역시 조금의 보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저기사람이 있다. ... more

덧글

  • satie 2010/04/28 07:10 # 답글

    전시 보러가겠습니다
    멋진 작업과 그리고 작업에 대한 질문들. 수고하셨어요.
  • 준호 2010/04/29 22:37 #

    감사합니다. ^^ 전시는 이미 끝났어요. 미리 초대를 했어야 하는데 죄송해요. 워낙 정신없이 준비해서 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을 초대하지 못했어요. 아마 5월 말이나 10월 중순에 그룹전의 형태로 다시 한번 전시를 하게 될 것 같은데, 그때 꼭 미리 알려 드리도록 할께요. 전시가 아니더라도 한번 뵈면 좋을것 같아요. ^^
  • satie 2010/04/30 18:39 #

    아 아쉽군요.
    저 올해 RCA 전시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준호님 전시 기간은 달랐나봐요
    ㅜ_ㅜ
    다음에 전시하게 되면 꼭 초대해주세요.. 전시 아니더라도 한번 뵈면 좋을거 같다는 생각 저도 절대 찬성입니다..^^ 저 한국 들어가기 전에 한번 뵜음 좋겠어요!
  • 준호 2010/05/01 06:46 #

    네 그러게요. ㅠㅠ 하지만 말씀 드린 것 처럼 조만간 다시 전시를 하게 될것 같아요. 그때 오실 수 있으면 좋을것 같아요. 전시 전에 알려 드리도록 할께요. 졸업 전시는 저도 갈 계획인데 오시기 전에 연락 주시면 뵐 수 있을것 같아요. 오실때 이메일로 연락 부탁 드려요. ^^
  • 2010/04/28 08:1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준호 2010/04/29 22:50 #

    과분한 칭찬 감사합니다. ^^ 제가 주제를 전달하는 방법이 비교적 직설적인 이유는 그 것이 제가 말하고 싶은 혹은 작업이 전달해야할 주제를 명확하게 만들어 준다는 이유도 있지만, 제가 그런 방식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것 같아요.

    여전히 디자이너의 사회참여가 지나치다거나 그래픽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과소평가 하는 '쿨'힌 태도를 지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조형적이고 관념적인 그래픽 언어'를 가지고 장난을 치면서 그게 마치 진정한 그래픽디자인 인양 구는데, 과연 한국이라는 사회가 그런 장난질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들일 수 있을만큼 근대화 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것 같아요.

    노동을 통해 작업을 하는 것이 확실히 보람이 큰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곳에서 용돈 벌이로 몇몇 그래픽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미지와 글자를 그리드에 맞춰 배열하고 깨끗하게 정돈해야 하는 작업은 뭐랄까 '내것' 같은 느낌이 안 들더라구요. 제가 해 놓고도 어디선가 본것같은 기분이 들때도 많구요.

    이번 전시는 어쩌다 보니 제 개인전처럼 되어 버렸는데 아마 그룹전의 형식으로 10월 쯤 다시 하게 될것 같아요. ^^



  • 아노말로칼리스 2010/04/28 10:59 # 답글

    비극이 예술을 만나는 순간이군요.
    형식은 다르지만 마치 게르니카를 연상시킵니다.

    좋은 전시가 되길 바랍니다.
  • 준호 2010/04/29 22:54 #

    감사합니다. 비극을 작업의 소재로만 사용하는 것에서 그치면 안된다.라고 항상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짐이 제 삶에 진정으로 반영이 되어야 제가 하는 작업 역시 진정성을 갖게 될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 2010/04/28 11:2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준호 2010/04/29 22:54 #

    감사해요. 말씀하신 것 처럼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 있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요. 그러기 위해선 꾸준히 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 김어진 2010/05/02 14:40 # 삭제 답글

    다행이다. 제시간에 전시했군 ㅋ 고생했다
  • 준호 2010/05/02 21:45 #

    엉 아슬 아슬 했다 ㅋ 홈페이지 바뀐게 훨 낮더라ㅎㅎ 내가 오늘 누구 만났는데 디자이너를 찾길래 너네 가르쳐 줬다. 한국에서 하는 일이라서. 홈페이지 가르쳐 줬는데 아마 연락이 갈지도 몰라. 꽤 큰일 갔던데 잘 해봐. ㅋ
  • 카즈 2010/05/03 13:16 # 삭제 답글

    멋지네요! 이런 전시라면 두리반에서 해도 어울릴것 같습니다..+_+
  • 준호 2010/05/11 23:40 #

    저도 다음에 한글로 작업을 해서 한국에서 전시할 기회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감사합니다. ^^
  • 2010/05/04 03:1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준호 2010/05/11 23:44 #

    고마워 ^^
  • 2010/05/04 08:3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준호 2010/05/11 23:41 #

    감사합니다. 먼곳에 있어서 오히려 더 제가 나고 자라온 곳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
  • 맑은여름 2010/05/11 11:17 # 삭제 답글

    저기 사람이 있다....이걸 잊지 말아야합니다...가족의 동의없이 몸을 난도질....제가 이세상 살면서 느끼는것 중 하나..."사람이 제일 우습다..." 우숩게 "처리"되고 있는 사람...사람이 살면서 사람을 제일 우습게 처리하는 세상...사람은 사람도 소중히 여겨야합니다.."사람"이란걸 잊지말았으면 합니다..글 잘읽었습니다...
  • 준호 2010/05/11 23:39 #

    감사합니다. 얼마전에 우리가 살던 용산 이라는 책을 봤습니다. 그책의 추천사에 이런 말이 있었어요. '그들'이 용산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그들과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한, 그들이 하는 모든것은 틀렸다. 그말에 많이 공감했습니다. 결국 중요한건 우리 주변의 사람도 나와 같은 동등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 같아요.
  • 2010/05/19 17:2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준호 2010/05/23 10:35 #

    감사합니다. ^^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 준비 잘 하시길 바랍니다. ^^
  • ^^ 2010/05/24 23:52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우연히 검색을 하다 들어오게 됐는데요 ^^
    처음엔 디자인이나 이런 검색을 통해 들어왔는데,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많은 생각들을 느끼고, 제가 잊고 있었던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성찰하게 되네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의, 공동의 문제를 생각하기가 쉽지 않은 세상인데
    디자이너로써 이를 함께 공유하고 나타내고자 하는 의지에 존경심이 드네요^^
    자주 들리도록 할께요~
  • 준호 2010/05/25 04:18 #

    안녕하세요.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무관심하게 살아가기엔 한국이라는 사회가 너무 극단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것 같아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한, 디자인이든 혹은 다른 어떤 학문이든 자신이 느끼는 것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떤 의무라는 생각도 듭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 unpacked.j 2010/07/14 00:47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같이 수업하시는 분 통해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벌서 몇달전에 올리신 글이지만 여전히.. 내년에도 10년 후에도 회자되어야할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전시는 온라인 상이지만 너무 잘 보았습니다. 정작 한국에 있는 나라는 사람은 무얼 하는 사람인지... 디자인이 무얼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돈에 묶여 채찍질 당하는 사람은 그들뿐만 아닌 곧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PD수첩을 보면서 눈물흘렸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예전에 노회찬님께서 서울시장님을 까는 영상을 보면서 도대체 누구의 이름이길래 그리도 또박또박 명확히 기억하시나 했습니다. 사건이 터진 그날 이후로 그 누가 그들의 마음을 진정 헤아리려고 노력했나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을 외면한 인간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게 놔둔 것이 너무나 죄스럽습니다. 제가 있는 커뮤니티 안에서라도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다시한번 논의하봐야 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업 부탁드리겠습니다~!
  • 배이화 2011/01/03 15:45 # 삭제 답글

    어휴. 그냥 마음이 먹먹해지네요. 감동이 전해집니다. 잘 모르지만, 마음을 움직이는게 진짜라는 생각이 듭니다. 탈북여성들에 대한 관심 감사하고 늘 응원하겠습니다.
  • 이브리 2011/03/02 12:40 # 삭제 답글

    잘봤습니다. 저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무엇을 하든 살아온 삶의 궤적을 털어 버릴 수는 없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69 작가선언때 용산을 소재로 작품을 써도 될 것인가 하는 논의가 작가들 사이에 있었다고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어떻든 역시 예술가들이 말해 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부끄럽지만 작년에야 관심을 가지게 된 저같은 사람도 있으니까요. 이작품은 이젠 전시 안하세요? 직접 보고 싶은데...
  • 준호 2011/03/04 00:07 #

    안녕하세요. 아직 이 작업으로 전시를 다시 할 계획은 없지만 한국에 돌아 가면 꼭 다시 한번 해 보고 싶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여전히 현재진형인 이슈기도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함게 생각해봐야 하는 주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
  • inwhan 2012/07/26 09:26 # 삭제 답글

    핀터레스트를 통해 뒤늦게 봤습니다.
    훌륭하십니다.
    초반의 유학에 대한 이야기.
    용산이야야기.
    작업방식.
    한동안 이곳에 머물며 여러 작업을 잘보고 갑니다.
  • 알버트찾기 2012/10/15 00:20 # 답글

    우와................................................................
  • 2014/01/14 18:09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소명 2014/01/14 22:27 # 삭제 답글

    오래된 글인데, 페이스북을 타고 이제야 보게 됐네요.
    그러고 보니 이 땅에선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는데
    시간은 무심히 지나가네요.

    이런 애도의 작업, 슬픔 속에 머무는 작업이
    그분들을 위로할 수 있기를 바라고
    빠르게 돌아가기만 하는 세상이 잠시 멈춰서서
    울음을 울 수 있기를 바라요.

    좋은 작업 잘 보고 갑니다.
  • LIKELOVE 2014/09/13 00:18 # 삭제 답글

    일상의실천 작품이 좋아 개개인의 디자이너분들을 검색하다가 들리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의 가치나 생각을 표현하는 작품들과 글들이 인상깊었는데, 특히 이러한 작업은 정말 널리 알렸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ㅠㅠ
    저도 작업을 함에 있어 좀 더 진지하게 임해야 겠다는 다짐(?)을 하고 갑니다...ㅎㅎ 자주와야겠어요!:)
  • mooncoin 2017/09/17 01:41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지나가던 아무개입니다. 작업내용 매우 잘 보았습니다-!! 질의응답을 좀 해야할 것 같습니다.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


twe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