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그래픽디자이너로서의 마음가짐 잡문

어느 그래픽디자이너의 블로그에 단 답글. 말하다 보니 너무 길어졌다.

그래픽디자인이 다른 모든 종류의 노동에 비해서 결코 특별한것이 아니라는 말은 동의합니다. 예전부터 해왔던 생각이지만, 디자이너를 포함한 뭔가 있어 보이려고 하는 지식인들(주로 이런 사람들은 몸을 쓰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죠)이 가지는 특권의식은 역겹기 그지없지요. 김규항님이 했던 말처럼, 몸을 쓰며 노동하는 사람들이 강을 건너갈 수 있는 다리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글 혹은 이미지로 세상에 자기 생각을 발언하는 (디자이너를 포함한)지식인들은 사람들의 생각의 간격을 이어주는 다리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관점에서, 지식인과 노동자가 자신의 직업이 '아무것도아니' 라거나 '특별할것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자기가 하는 일에 책임감을 갖고, 열정을 갖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런 의식을 갖는 일은 대한민국과 같이 근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 받은 교육에 비추어서 세상을 바라본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할 만한 선생님을 만나고, 평균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을 분명 남들과 다를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제가 다녔던 중앙대학교의 수준(혹은 그 이하)의 교육을 받았을테고, 그들이 생각하는 시각디자인이란, 클라이언트의 요구대로 원하지도 않는 이미지를 만드는 노동의 연장이지, 결코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닐 겁니다. 디자인을 돈버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이 하고(공부하고 있는) 것이 한 사회의 문화와 정신에 관련된 가치있는 일이라는 동기부여라고 생각합니다. 

모더니즘 이전 공예에 불과했던 디자인이, 모더니즘을 거치면서 디자인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디자이너들에게 꿈꾸게 해주었고,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 이르러 디자인 또한 하나의 노동에 불과한 것이 었다는 회의주의로 바뀌게 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 드린 것 처럼, 대한민국은 아직 근대화 조차 이루어지지 못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전근대적인 사회가 모더니즘의 단계없이 포스트 모던으로 넘어갔을 때 일어 나는 현상들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의 분위기는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정신상태에 그대로 반영 됩니다. (티셔츠 디자인이 하고 싶었던 학생에게 굶어죽기 싫으면 광고하라고, 무채색이 쓰고 싶은 학생에게 빨간색을 쓰라고 강요하는 등의 일들이 지금 우리나라 디자인 대학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디자인이 세상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꿈꾸기도 전에 '디자인은 별거 아니다'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먼저 접한다면, 우리가 걱정했던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웃어넘길 수 없는 일들이 그들의 손에 의해서 다시 반복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저는 님처럼 특별한 환경(존경할 만한 선생님을 만나고, 자의식있는 교육을 받아온)을 거치지 않고는 우리나라에서 자의식을 갖기란 거의 불가능 하다고 생각합니다. 몇몇 사람들이 비판하고 있지만 흔히 더치디자인이라고 불리는 유행도 그것을 반영합니다. 메뚜기 때처럼 하나의 유행을 보고 끌려가는 우리가 디자인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과연 '쿨'해질 수 있을까요. 예를들어 슬기와 민이 처음 한국에 왔을때 그들은 지금 처럼 유명하지 않았습니다. ㅎ대학 학생들은 그들의 사고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많은 학생들이 그들의 방식을 못마땅해 했습니다. 하지만 몇년의 시간이 흐른 후, 전시와 강연등을 통해서 유명해진(예일대 출신이라는 후광과 함께) 그들을 모방하려는 학생들이 많아졌고 지금은 하나의 유행이 되어버렸습니다. (국민대학교에서 성재혁 선생님이 가지는 영향력도 긍정적인 측면만큼 부정적인 면이 많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슬기와 민, 혹은 성재혁 선생님 처럼 하나의 작업 방식을 소개해준 사람들을 아무 생각없이 모방하면서, 디자인 뭐 별거 있어? 라고 말하는 것 보다는(자기가 모방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기 쉬운 거겠죠), 디자인이 (그렇지 않다고 할지라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창작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만의 작업 방식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제 관점은 우리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입니다.

문화적 수준이 시궁창인 나라에서 우리는 좀 더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남들보다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미적 수준이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면, 냉소적인 자세로 세상을 내려다볼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정신 문화를 어떻게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 소위 지식인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덧글

  • ㅇㅇ 2009/03/02 03:45 # 삭제 답글

    한국에서 디자인 한다는 사람들의 인적 수준이 높지 않고

    그러다 보니 맨날 외국에서는 어쩌니 저쩌니 하는 소리하는 거도

    말이 안먹히는 거죠
  • 준호 2009/03/02 08:59 #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잘 안가는데요. 한국 디자이너들의 수준이 높지 않아서 외국 디자인이 잘 안먹힌다는 말인가요? 그렇다면 글의 내용을 오해하신것 같구요. 아니라면 설명 부탁드립니다.
  • 2009/03/04 22:1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9/03/06 15:2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준호 2009/03/08 05:21 #

    네ㅎㅎ 어민선씨하고 어쩌다 보니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답장이 다시 올라올줄 알았는데 많이 바쁜가봐요ㅎ 난 잘 지내고 있어요. 좀 있으면 대학원 인터뷰하고, 4월 중순쯤엔 한국에 갈거 같은데 그때 한번 봐요ㅎㅎㅎ
  • ㅆㅔ 2009/03/07 14:02 # 답글

    진짜 가치가 실종되어 버린 사회라 그런지
    당연한 얘기를 하려고 해도 긴말이 필요한 것 같아요

  • 준호 2009/03/08 05:20 #

    말이 너무 길어지면 (요즘처럼 글읽기가 흔치 않은 시대에)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제대로 안될것 같고, 그렇다고 간단히 말하자니 할말이 많고, 고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ㅆ ㅔ님이 쓰시는 글이 저는 굉장히 효과적인 것 같은데요. 짧지만 메세지는 확실한ㅎㅎ
  • ㅆㅔ 2009/03/09 02:20 #

    으핫 저는 글도 아닌 걸 걍 싸지르는 거죠ㅎㅎ
    제가 어렴풋하게 생각만 하고 있는 걸 글로 써주셔서 참 좋아요^^
  • 김민지 2009/06/22 13:03 # 삭제 답글

    학생으로서 여러가지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비공개로 담아갑니다 :D
  • 준호 2009/07/01 17:51 #

    네, 감사합니다. ^^
  • 지민 2010/02/11 16:26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하고 있고, 3학년이 중반의 학생입니다.
    이 글을 읽고 너무 공감되서요. 지금 학교에선 상업적인 스킬에 치중하기 보다 디자인 역사에 관련한 특히 다다이즘에서 더 스타일 그리고 스위스 네덜란드가 내세웠던 원칙등을 배우고 있습니다. 폄하하려는 건 절 때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지금 한국 디자인을 봤을 때, 의미를 잃고 사용되는 이미지 위주, 원칙없이 스타일만 따라하는 듯한 그런 디자인들을 대할 때, 괴리감이랄까. 그런게 느껴져서요. 혼자 타지에 나와 있는 상태라, 당연히 졸업을 하고 한국에 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이젠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취업은 좀 더 미루고,(한국에 돌아가는 것) 미국이든 어디든 대학원에서 더 공부를 해야하나? ( 여기 홈페이지도 영국 대학원 과정에 대해서 검색하다가 오게 됬는데, )어쪄면 공부를 더 할 수록 그런 괴리감이 더 커져질 뿐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고 제가 아주 독하진 못해서 한국에 있는 모든 걸 정리하고 홀홀단신으로 다른 나라에 정착할 수 있는 용기가 아직은 없네요. 지금도 영국에서 공부하고 계신거세요? 언젠가 모든 가치가 우선으로 떠 오를 때가 있게 되길 바랍니다.
  • 준호 2010/02/12 11:18 #

    안녕하세요. ^^ 네 저도 영국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미국도 그렇겠지만 이곳에 오고나서 참 다른것들을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디자인 뿐만 아니라, 문화 자체가 너무 달라서 때로는 당황 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던것 같아요.
    사실 처음에는 그런 자유로워 보이는 문화가 마냥 부럽기만 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그들이 이런 문화를 갖게 된것에는 이유가 있고, 또 그것이 마냥 부럽기만 한것은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알것 같았어요.
    지 민님이 말씀 하신 것처럼, 저도 유학 이후의 삶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데, 저는 좀 이상하게 들릴수도 있지만, 어떤 책임감 같은 것을 느껴요. 여러가지 요인들에 의해서 저는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한 여러 경험들을 할수 있었고, 그 만큼 몸으로 배운것들도 많은데, 이 모든 것들을 그냥 외국에서 살면서 나 자신만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의 문화, 특히 디자인문화가 엉망이라는 것은 누구나 느끼고 있고, 그것을 비판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좀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일은 쉬운일이 아닐테니까요. 지민님과 같이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계신 분들이, 이 엉망으로 돌아 가는 한국의 문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것 처럼, 언젠가 머리속의 생각들이 명확해 질 때가 오면,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 화이팅 입니다. ㅎ
  • 2010/03/19 00:4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SA 2011/03/09 17:24 # 삭제 답글

    머리한곳에서 빙산의일각처럼 생각했던 부분이였던 내용을 정리된듯한 내용으로 보게되네요... 지식인들이여! 영웅이 되어라!
  • 준호 2011/03/11 02:10 #

    지금 다시 읽어 보니 어색한 부분이 많이 눈에 띄네요. ^^: 영웅까지는 아니더라도 배운만큼책임감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재니스 2015/02/21 00:16 # 삭제 답글

    디자인이라는거 2프로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두가지 제품을봤을때 가격은 배가 차이나도 2프로의 차이때문에 더 맵시있는것을 선택하잖아요..? 디자이너는 그 미묘한차이를 만드는일이라생각합니다..아직 한국에서는 그 작지만 큰차이를 "별거 아닌것. 아무나 할수있는것" 이라 생각하는거같아요. 그래서 연봉도 작고..노동의가치는 떨어지고..발전할수있는사람들이 그자리에 그냥 도태되고.
    얼마전에 말도안되는 기사를읽었어요.
    모 폰트회사에서 거금을들이고 새로 개발하는 한글 글꼴 개발 프로젝트에 외국인디자이너를 큰돈을 들여서 섭외했다고 하네요
    이무슨 아이러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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