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제도 폐지 잡문

불필요한 서류 작성과 촉박한 일정, 그리고 가격으로 경쟁 입찰하는 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용역 업체 입찰’이라는 용어가 말해주듯 모든 입찰의 과정에서 디자이너는 ‘창작자’가 아닌 ‘용역 업체’로 취급되고, 누가 더 저렴한 가격을 제안했는가를 선별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그 입찰의 당락을 결정하는 심사위원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실무에서 은퇴한지 오래된 ‘대학교수’ ‘협회장’의 경우가 많고, 좋은 디자인을 가려내는 기준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디자인을 가격이나 심사위원의 주관적 기준에 따라 결정하는 입찰 제도가 폐지되고,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 사이의 협업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방식으로 제도가 개선되기를 희망합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졸업전시 2017 잡문

3년 전 첫 수업에서 학생들은 “정말 이런 작업을 해도 되나요?”라고 질문했다. 대학에서 진행되는 디자인 작업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는 학교의 가르침에 순종적으로 따라왔던 그들에게, 그동안 가져보지 못한 표현의 자유를 주었을 때 어떤 결과물이 만들어질지 무척이나 기대됐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부터 여성이기 때문에 경험해야 했던 부조리한 일들, 그리고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에 이르기까지 작업의 주제와 표현의 방식에 제약을 두지 않고 다양한 작업이 이루어졌다. 나는 그들에게 학점 때문에 마지못해 해야하는 ’과제’가 아닌, 과정의 즐거움과 결과에 책임을 지는 ‘작업’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가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많은 시행착오와 거친 표현방식 덕분에 학교의 ‘높은 분’과 ‘어르신’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작업이 여과 없이 졸업전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고 갔던 다양한 의견과 논쟁 역시 그들이 앞으로 작업을 진행하며 겪게 될 유의미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내일, 일 년 동안 준비한 학생들의 작업이 다시 한번 졸업전시회의 무대에 공개된다. 지난 수업에서 나는 ‘이런 주제를 정말 감당할 수 있겠냐’고 학생들에게 반문했다. 아마도 두 질문의 간극이 내가 이대에서 얻은 소정의 성과일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자신이 선택한 주제와 표현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그 고민의 대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들의 노력과 시간에 박수를 보낸다.

이화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졸업전시 2017
VISUAL VOYAGE 2017
2017.6.16-6.21 
이화여자대학교 ECC B4 극장

https://www.facebook.com/evv2017/
포스터 디자인. 박지슬


운동의 방식 (초안) 잡문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적극적,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일을 의미하는 운동(運動)은, 현대사회에서 일반적으로 4가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일어난다.1)
1. 민주 운동: 정치적 권리를 유지하거나 형성함 2. 노동 운동: 노동 현장의 방어적인 통제와 경제 권력의 보다 일반적인 분배 3. 환경 운동: 사회 행위에 의해 자연세계가 변형되는 것으로부터 야기되는 환경적, 사회적 손실을 막음 4. 평화 운동: 공격적인 민족주의와 군사력의 광범위한 영향에 도전.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사회의 계급적 모순 때문이며, 따라서 운동은 계급사회의 성립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디자인’과 ‘운동’, 두 단어의 조합이 생경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디자인이라는 행위가 계급사회의 말단에서 행해지는 ‘노동’이라는 인식 대신 ‘예쁘고 보기 좋게 상품을 포장하고 광고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더욱 일반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운동이라는 개념이 광범위하게 통용되고 있는 현재에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운동의 이미지는 여전히 딱딱하고, 무겁고, 경직되어 있다. ‘운동권’ ‘좌파’ ‘진보’라는 단어가 한국 사회에서 점유하고 있는 이미지와, ‘문화’ ‘예술’ ‘디자인’ 등의 단어로부터 연상되는 이미지의 간극은 가늠하기 조차 어렵다.

그러나 어쩌면 운동이라는 단어가 갖는 이질감은 그 단어가 지칭하는 행위가 ‘과격함’이라는 단어로 통칭되는 어느 극단의 지점을 향하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운동이란 정치적 발언을 일삼고, 경찰과 대치하고, 단식 투쟁을 통해 자신이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는지 모른다.

일상의실천은 디자인을 업으로 삼는 3명의 디자이너가 시작한 작은 회사다.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계약을 체결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이미지를 생산하고 전달한다. 디자인이 세상을 변화 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아마도 디자인의 결과물 자체가 아닌, 디자이너가 겪는 노동 과정의 부당함과 부조리함을 개선하기 위한 디자이너 개개인의 노력이 쌓여서 이루어질 것이다. 디자인 비용 삭감, 일방적인 계약 해지, 디자인 수정 통보 등 디자이너가 운동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목표는, 일반적인 노동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디자인이라는 행위가 사회에 개입하고, 목소리를 내며, 그 자체로 하나의 운동의 방식일 수는 없을까. 일상의실천은 그 물음에서부터 디자인을 통해 사회에 대해 발언하고 그 안으로 개입하려 했다.

운동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운동의 이유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어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면, 그 무수한 욕구를 반영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운동의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디자인은 그 자체로 목소리를 내는 도구일 수도, 누군가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 이미지를 만들고 텍스트를 편집해 인쇄물을 만들어 내는 디자인이란 노동은, 어쩌면 그 운동의 역할을 맡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일 것이다.

‘운동’은 적극적인 참여인 동시에 지속적인 행위를 포괄한다. 때문에 실천되지 않는 운동은 하나의 방식을 형성할 수 없다. 일상의실천은 2014년부터 지금까지 매 해 2-3개의 자체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 작업들을 통해 ‘디자인을 통한 운동이란 무엇인가’, 자문해왔다. ‘운동의 방식’은 그 질문에 대한 현시점에서 내릴 수 있는 대답으로 이루어진 전시다.

디자인과 노동, 운동과 실천, 일상과 사회에 대한 질문은 따라다닐 것이고, 그 대답을 찾기 위한 일상의실천의 노력 역시 이어질 것이다.

2017. 4.


1) 자본주의와 현대사회 이론 / 앤서니 기든스 / 박노영 외 옮김 / 2008 / 도서출판 한길사

소망 잡문

"내 주변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자. 그들을 평가하거나 단정짓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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