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라는 이름의 착취 잡문

일상의실천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인쇄물 디자인을 진행했다. 그 당시 테이크아웃드로잉은 꽤 괜찮은 클라이언트였다. 그들은 디자인 작업에 대한 비용을 상대적으로 적게 지급하는 대신 작업에 대한 자유도를 보장해줬다. 그들은 그들이 운영하는 카페 공간을 작가들에게 레지던시 공간으로 제공하고, 2-3달의 기간 동안 진행된 작가의 작업을 카페에서 전시했는데, 우리가 맡은 디자인은 주로 그 전시의 내용을 담은 신문을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몇몇 작가들이 우리가 했던 디자인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때도, 테이크아웃드로잉 대표 최소연 씨는 신문의 디자인은 디자이너 고유의 영역이라고 인정해줬고 그 때문에 발생한 작가와의 갈등을 기꺼이 감당하는 태도를 보였다. 

2015년 싸이와의 임대차 분쟁이 일어나면서, 나는 싸이의 변호사와 그들이 고용한 용역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작성했고, 그 글로 인해 싸이의 변호사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다. 이후 ’답변서’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많은 디자이너와 창작자들의 도움으로 소송은 기각됐다. 유음의 편집인 정현석 씨는 그때의 인연으로 처음 만났다. 일상의실천이 테이크아웃드로잉과의 관계를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로 규정하고 참여한 디자인에 대한 보수를 요구했던 것에 비해, 정현석 씨는 모든 생계를 위한 활동을 접고 테이크아웃드로잉과 싸이의 분쟁에 연대했다. 

그는 약 8개월의 기간 동안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먹고 자며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용역과 강제 철거에 맞섰다. 그 기간 동안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발간한 두 권의 책을 편집, 교정, 교열했고, 싸이의 변호사가 보낸 소장 낭독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현장에 머물렀다. 결국 많은 사람의 도움과 연대로 테이크아웃드로잉과 싸이는 합의했고, 일상의실천과 정현석 씨 역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의 공동 대표 최지안 씨와, 송현애 씨는 그 사건 이후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활동을 하는 ’생산자’라는 이름의 단체를 조직하고, 일상의실천에 디자인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그러나 ‘생산자’는 우리에게 무보수 디자인을 연대라는 이름으로 요구했고, 클라이언트보다 더 촉박한 일정과 디자인 수정 요청으로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일상의실천이 디자인한 로고와 포스터 디자인에 대한 문서로 전달된 수정 요청은 다음과 같았다. 

- 폰트가 약한 느낌이다. 
- 귀엽게 강하도록, 아름다운 것이 강하도록 해달라. 
- 힙한 느낌으로 소소하고 작고 귀엽고 보전할 가치가 있는, 쉽게, 미래적인 느낌으로 해달라.
- 포스터와 로고타입이 엇박자다. 너무 투쟁적이다. 일러스트가 들어가면 좋겠다. 
- 이건 아닌것 같다. 네거티브한 느낌이 든다. 
- 식물적인 느낌, 꽃 같은 것이 들어가면 좋겠다. 

“디자인을 선물로 받겠다”라는 말과는 전혀 다른 그들의 태도에 우리는 이것이 협업이나 연대가 아닌, 재능 착취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판단하고, 생산자 작업을 더 진행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 이후 디자인 스튜디오 둘셋이 생산자 디자인에 참여했지만, 연대를 가장한 착취는 또다시 반복되었다. 생산자는 새롭게 합류한 둘셋에게 생산자 캠페인의 아이덴티티(생산자 로고, 뽑지마시오, 안티 젠트리피케이션 레터링과 아이콘)와 관련 그래픽 제작물(포스터, 에코백, 스티커 6종, 뱃지, 티셔츠 2종, 전단지, 텀블벅 리워드 이미지, 현수막 10여 개, 덱체어 그래픽 10종, 컵홀더, 시트작업)과 팝업샵 및 광화문 마켓 공간 연출을 포함한 전반적인 디자인을 약 3주의 기간 동안 제작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생산자는 이 모든 제작물과 젠트리피케이션 매뉴얼의 제작 과정에서 디자인 시안을 컨펌하는 ‘갑’의 태도를 취했고, 특히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매뉴얼 제작의 주체가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뉴얼의 모든 컨텐츠를 제공하고, 편집, 디자인을 진행한 유음, 둘셋 그리고 구본기 생활경제연구소(이하 하마들)는 매뉴얼은 창작자의 것이고, 생산자 캠페인에 협업의 형태로 참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생산자’ 로고가 빠졌다는 이유로 매뉴얼 제작은 중단됐다. 결국 ‘하마들’은 생산자를 탈퇴했다. 

중단된 매뉴얼은 하마들의 생산자 탈퇴 이후 서교예술실험센터의 후원으로 제작될 수 있었다. 이 매뉴얼이 누구의 것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매뉴얼이 실제로 쓰일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에서의 역할이었기 때문에, 생산자의 활동과는 별개로 제작 자체가 의미 있는 운동이었다. 그러나 ‘생산자’는 서교예술실험센터에 민원을 보내 ‘하마들’이 생산자의 콘텐츠를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얼마 전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진행한 법률 자문 결과, 매뉴얼 발행 주체는 ‘하마들’이 맞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또한 ‘유음’ 출판사가 생산자 활동과는 별개로 지원받은 기금에 대해서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출판사’라는 민원을 넣어 지원금을 끊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둘셋과 유음은 평균 연령 25세로, 2017년에 시작한 신생 디자인 스튜디오, 출판사다. 이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이제 막 입지를 다지기 시작한 ‘사회초년생’으로 (어쩌면 당연하게도) 본업으로 생계를 유지해나가는 것이 벅찬 상황이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유음을 포함한 많은 창작자들에게 “그 사람**이 우리랑 작업한 걸 포트폴리오로 교수도 되고 잘 나가지 않느냐. 예산이나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같이 기획해보자. 결과물을 만들어주면 그걸로 예산을 만들어보겠다. 난 우리 작가 믿는다.” 등의 말로 참여를 독려했다. 그러나 ‘생산자’는 정작 연대의 마음으로 참여한 이들에게 매뉴얼 창작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집단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연대’라는 이름의 착취를 멈추고 싸이와의 분쟁 이전, 예쁜 카페를 운영하던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생산자’의 로고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작이 중단되어야 한다면, 그 출판물은 운동의 현장에서 본인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쿨한 인테리어와 힙한 디자인을 액세서리처럼 걸치고, 재난, 망명 등의 지적 허영이 가득한 단어로 포장된 재능착취를 멈춰야 한다. 진짜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디자이너, 편집자, 활동가의 희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생산자’라는 집단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대의와 연대에는 강제력이 없다.”****

글. 권준호 

* ‘생산자’는 서교예술실험센터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각각 민원을 넣어 출판사 ‘유음’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또한 연합뉴스, 한겨레, 중앙일보 등에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매뉴얼’은 하마들의 창작물이 아니라는 내용의 정정보도 요청을 했다. 

**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일상의실천, 진달래&박우혁, 워크룸, 제로랩 등과의 작업을 근거로 젊은 창작자들의 참여를 요구했다. 

*** 테이크아웃드로잉과 오랜 친분이 있는 ‘꽃밭’ 매장을 본부로 삼고, ‘생산자’ 활동의 수익금을 ’꽃밭’의 월세로 지출할 계획이었다. 그 월세는 약 300만 원이었는데, 생산자에 참여한 소수 몇몇의 동의로 이루어진 이 합의는 디자이너를 포함한 대다수의 창작자들에게는 ‘참여 의지를 떨어뜨린다’라는 이유로 전달되지 않았다. 

*** 둘셋의 디자이너 방정인 글 참조
https://www.facebook.com/kaybannie/posts/1395025940595609

입찰제도 폐지 잡문

불필요한 서류 작성과 촉박한 일정, 그리고 가격으로 경쟁 입찰하는 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용역 업체 입찰’이라는 용어가 말해주듯 모든 입찰의 과정에서 디자이너는 ‘창작자’가 아닌 ‘용역 업체’로 취급되고, 누가 더 저렴한 가격을 제안했는가를 선별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그 입찰의 당락을 결정하는 심사위원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실무에서 은퇴한지 오래된 ‘대학교수’ ‘협회장’의 경우가 많고, 좋은 디자인을 가려내는 기준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디자인을 가격이나 심사위원의 주관적 기준에 따라 결정하는 입찰 제도가 폐지되고,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 사이의 협업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방식으로 제도가 개선되기를 희망합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졸업전시 2017 잡문

3년 전 첫 수업에서 학생들은 “정말 이런 작업을 해도 되나요?”라고 질문했다. 대학에서 진행되는 디자인 작업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는 학교의 가르침에 순종적으로 따라왔던 그들에게, 그동안 가져보지 못한 표현의 자유를 주었을 때 어떤 결과물이 만들어질지 무척이나 기대됐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부터 여성이기 때문에 경험해야 했던 부조리한 일들, 그리고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에 이르기까지 작업의 주제와 표현의 방식에 제약을 두지 않고 다양한 작업이 이루어졌다. 나는 그들에게 학점 때문에 마지못해 해야하는 ’과제’가 아닌, 과정의 즐거움과 결과에 책임을 지는 ‘작업’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가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많은 시행착오와 거친 표현방식 덕분에 학교의 ‘높은 분’과 ‘어르신’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작업이 여과 없이 졸업전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고 갔던 다양한 의견과 논쟁 역시 그들이 앞으로 작업을 진행하며 겪게 될 유의미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내일, 일 년 동안 준비한 학생들의 작업이 다시 한번 졸업전시회의 무대에 공개된다. 지난 수업에서 나는 ‘이런 주제를 정말 감당할 수 있겠냐’고 학생들에게 반문했다. 아마도 두 질문의 간극이 내가 이대에서 얻은 소정의 성과일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자신이 선택한 주제와 표현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그 고민의 대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들의 노력과 시간에 박수를 보낸다.

이화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졸업전시 2017
VISUAL VOYAGE 2017
2017.6.16-6.21 
이화여자대학교 ECC B4 극장

https://www.facebook.com/evv2017/
포스터 디자인. 박지슬


운동의 방식 (초안) 잡문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적극적,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일을 의미하는 운동(運動)은, 현대사회에서 일반적으로 4가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일어난다.1)
1. 민주 운동: 정치적 권리를 유지하거나 형성함 2. 노동 운동: 노동 현장의 방어적인 통제와 경제 권력의 보다 일반적인 분배 3. 환경 운동: 사회 행위에 의해 자연세계가 변형되는 것으로부터 야기되는 환경적, 사회적 손실을 막음 4. 평화 운동: 공격적인 민족주의와 군사력의 광범위한 영향에 도전.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사회의 계급적 모순 때문이며, 따라서 운동은 계급사회의 성립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디자인’과 ‘운동’, 두 단어의 조합이 생경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디자인이라는 행위가 계급사회의 말단에서 행해지는 ‘노동’이라는 인식 대신 ‘예쁘고 보기 좋게 상품을 포장하고 광고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더욱 일반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운동이라는 개념이 광범위하게 통용되고 있는 현재에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운동의 이미지는 여전히 딱딱하고, 무겁고, 경직되어 있다. ‘운동권’ ‘좌파’ ‘진보’라는 단어가 한국 사회에서 점유하고 있는 이미지와, ‘문화’ ‘예술’ ‘디자인’ 등의 단어로부터 연상되는 이미지의 간극은 가늠하기 조차 어렵다.

그러나 어쩌면 운동이라는 단어가 갖는 이질감은 그 단어가 지칭하는 행위가 ‘과격함’이라는 단어로 통칭되는 어느 극단의 지점을 향하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운동이란 정치적 발언을 일삼고, 경찰과 대치하고, 단식 투쟁을 통해 자신이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는지 모른다.

일상의실천은 디자인을 업으로 삼는 3명의 디자이너가 시작한 작은 회사다.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계약을 체결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이미지를 생산하고 전달한다. 디자인이 세상을 변화 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아마도 디자인의 결과물 자체가 아닌, 디자이너가 겪는 노동 과정의 부당함과 부조리함을 개선하기 위한 디자이너 개개인의 노력이 쌓여서 이루어질 것이다. 디자인 비용 삭감, 일방적인 계약 해지, 디자인 수정 통보 등 디자이너가 운동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목표는, 일반적인 노동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디자인이라는 행위가 사회에 개입하고, 목소리를 내며, 그 자체로 하나의 운동의 방식일 수는 없을까. 일상의실천은 그 물음에서부터 디자인을 통해 사회에 대해 발언하고 그 안으로 개입하려 했다.

운동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운동의 이유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어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면, 그 무수한 욕구를 반영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운동의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디자인은 그 자체로 목소리를 내는 도구일 수도, 누군가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 이미지를 만들고 텍스트를 편집해 인쇄물을 만들어 내는 디자인이란 노동은, 어쩌면 그 운동의 역할을 맡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일 것이다.

‘운동’은 적극적인 참여인 동시에 지속적인 행위를 포괄한다. 때문에 실천되지 않는 운동은 하나의 방식을 형성할 수 없다. 일상의실천은 2014년부터 지금까지 매 해 2-3개의 자체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 작업들을 통해 ‘디자인을 통한 운동이란 무엇인가’, 자문해왔다. ‘운동의 방식’은 그 질문에 대한 현시점에서 내릴 수 있는 대답으로 이루어진 전시다.

디자인과 노동, 운동과 실천, 일상과 사회에 대한 질문은 따라다닐 것이고, 그 대답을 찾기 위한 일상의실천의 노력 역시 이어질 것이다.

2017. 4.


1) 자본주의와 현대사회 이론 / 앤서니 기든스 / 박노영 외 옮김 / 2008 / 도서출판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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